난임이라는 긴 터널, 진짜 ‘원팀’이 되어가는 우리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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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험관 시술을 결정했을 때만 해도 우리는 꽤 희망적이었다.
둘 다 건강검진에서 특별한 이상이 없었고,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마음 한편에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건강하니까 금방 되지 않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자신감이 오히려 더 큰 충격으로 돌아왔던 것 같다.
가임력 검사 결과를 받아든 날, 나는 한동안 멍했다. 임신이 잘되지 않는다는 사실보다도, 내 몸의 상태가 숫자와 의학 용어로 설명되는 경험이 낯설고 서글펐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괜찮지 않았다.
그리고 그 감정을 충분히 정리하기도 전에 시험관 과정은 시작됐다.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여정
시험관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놀랐던 건 시술이 아니라 행정이었다.
챙겨야 할 서류, 동의서, 검사 결과지, 병원 일정, 약 처방.
처음 듣는 의학 용어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
병원에서는 친절하게 설명해주지만 집에 돌아오면 또 헷갈렸다.
“그래서 다음 진료는 언제지?”
“이 약은 언제부터 먹는 거였지?”
“이 서류는 제출한 건가?”
거기에 매일 정해진 시간에 맞춰야 하는 주사와 약 복용까지 더해지니 머릿속은 늘 복잡했다.
시험관은 단순히 병원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생활 전체가 치료 스케줄 중심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결국 한 번은 터졌다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폭발해버렸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시험관은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주사를 맞는 것도 나고,
채혈을 하는 것도 나고,
시술을 받는 것도 나다.
그러니 나는 자연스럽게 모든 과정에 몰입하게 된다.
반면 남편은 다르다.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저 이 모든 과정이 너무 낯설고 어려운 세계인 것이다.
병원 용어도 생소하고,
치료 과정도 복잡하고,
무엇을 챙겨야 하는지도 잘 모른다.
그런데 나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일정을 확인하는 것도,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도,
서류를 챙기는 것도,
병원 안내문을 읽는 것도.
어느 순간 모든 책임이 내 어깨 위에 올라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서운함은 결국 화가 되어 터져 나왔다.
남편도 처음인 건 마찬가지였다
감정이 조금 가라앉고 나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남편이 무심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남편도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랐던 것뿐이었다.
나는 이미 시험관이라는 세계 안에 들어와 있었지만 남편은 아직 입구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생각을 조금 바꿨다.
“왜 이것도 몰라?”
가 아니라
“당신은 어떤 걸 맡을 수 있어?”
라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우리만의 역할을 정했다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남편이 직접 주사를 놔주는 부부도 많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남편은 주사를 무서워한다.
정말 진심으로.
그래서 그 역할은 처음부터 포기했다.
대신 남편이 할 수 있는 일을 함께 찾았다.
- 병원 예약과 검사 일정 확인하기
- 필요한 서류와 동의서 챙기기
- 병원 설명 함께 듣기
- 가능한 일정에는 같이 병원 가기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 작은 역할 분담이 생각보다 큰 변화를 만들었다.
특히 병원에 함께 가는 것이 그랬다.
진료실에서 같은 설명을 듣고,
같은 정보를 공유하고,
같은 고민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됐다.
남편도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치료 과정 자체를 ‘우리의 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시험관이 가르쳐준 것
시험관을 하면서 깨달은 사실이 있다.
우리는 처음부터 완벽한 원팀이 아니었다.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자리에서 같은 문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서운함도 있었고,
오해도 있었고,
때로는 눈물도 있었다.
하지만 작은 역할 하나씩 나누고,
서로의 노력을 인정해주고,
함께 병원을 다니고,
같이 걱정하고,
같이 기다리다 보니
조금씩 진짜 한 팀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는 부부에게
혹시 지금 시험관 과정 중이라면 남편이 아무것도 안 한다고 단정 짓기 전에 한 가지만 부탁해보면 좋겠다.
아주 작은 일이어도 괜찮다.
병원 예약을 맡겨도 좋고,
다음 진료 일정을 확인해달라고 해도 좋고,
함께 병원에 가달라고 해도 좋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이해하는 남편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할 기회를 주면 생각보다 많이 달라진다.
시험관은 혼자 버티는 싸움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 건너는 긴 터널이다.
그리고 그 터널을 지나며 우리 부부는 알게 됐다.
좋은 팀은 처음부터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시간을 함께 통과하면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아기가 우리 부부를 부모로 만들어주기 전에, 시험관이라는 시간이 먼저 우리를 한 팀으로 만들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