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 리사 펠드먼 배럿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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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기 전까지, 나는 뇌에 대해 꽤 안다고 생각했다. 전두엽은 이성을 담당하고, 편도체는 공포를 담당하며, 우뇌는 창의성을 맡는다는 이야기. 학교에서 배우고, 책과 영상에서 반복해서 접한 지식들이 머릿속에 하나의 지도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리사 펠드먼 배럿은 첫 장부터 그 지도를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구겨버린다.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뜻밖’이라는 표현이 다소 과장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책장을 덮고 나니 오히려 그 표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던지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뇌과학 지식이 아니다. 우리가 뇌를 이해하는 방식, 더 나아가 인간을 이해하는 틀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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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럿이 가장 먼저 부수는 것은 ‘삼위일체 뇌’ 이론이다. 파충류의 뇌 위에 포유류의 뇌가, 그 위에 인간의 이성적인 뇌가 층층이 쌓여 있다는 이 모델은 교양 과학서에서 지겨울 만큼 반복되어 왔다. 그런데 배럿은 이것이 허구라고 말한다. 뇌는 층위로 나뉜 위계 구조가 아니라, 무수한 연결로 이루어진 하나의 네트워크라고. 전두엽이 이성을 담당하고, 편도체가 공포를 담당한다는 식의 ‘구역별 담당제’도 마찬가지다. 뇌는 그렇게 깔끔하게 분업하지 않는다. 하나의 감정, 하나의 생각을 만들기 위해 수십 개의 영역이 동시에 활성화되고, 끊임없이 서로를 조율한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뇌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단순화된 이야기였는지 선명하게 보인다. 그리고 그 단순함이 꽤 오래, 꽤 많은 사람들에게 진실처럼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남는다.

책에서 가장 강렬하게 남은 개념은 ‘예측 기계’로서의 뇌다. 우리는 흔히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그 다음에 판단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배럿에 따르면 이 순서가 틀렸다. 뇌는 감각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예측하고 있다. 과거의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지금 이 상황이 어떨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만들어 놓고, 실제 감각이 들어오면 그 예측을 살짝 수정할 뿐이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뇌가 구성한 버전의 현실이다.

처음에는 이게 철학적인 과장처럼 들렸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설득력이 있다. 배가 고플 때 보는 음식과 배가 부를 때 보는 음식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 불안한 날 낯선 사람의 눈빛이 더 위협적으로 읽히는 것,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에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것. 이것들이 단순한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뇌가 실제로 다른 현실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놀랍도록 많은 것들을 이해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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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강 ‘타인의 뇌라는 축복 또는 지옥’에서 배럿은 뇌의 사회성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각자의 머릿속에서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한다고 느끼지만, 뇌는 사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조율된다. 대화를 잘 나누는 순간 두 사람의 뇌파가 동기화된다는 연구, 부모의 예측 패턴을 아이의 뇌가 흡수하며 성장한다는 이야기는 “나”와 “타인” 사이의 경계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흐릿하다는 걸 보여준다. 좋은 관계가 뇌를 건강하게 만들고, 나쁜 관계가 신체 질병 위험을 높인다는 말도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신경과학적 사실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AI가 떠올랐다. 인간의 뇌는 타인의 뇌와 비가시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을 통해 감정과 신체 상태가 조율된다. 그런데 AI는 이 메커니즘에 직접 접근할 수 없다. 대신 행동 데이터, 언어 패턴, 통계적 경향성을 통해 인간 뇌의 출력 결과를 모델링하려 한다. 뇌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뇌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역산하는 방식으로. 이렇게 보면 AI의 한계와 접근 방식이 조금 더 선명하게 이해된다. 완전한 복제가 아니라, 외부에서 관찰 가능한 것들을 통해 최대한 근사치를 만들어내는 시도.

6강과 7강에 이르면 배럿의 이야기는 더 깊어진다. 뇌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른 ‘마음의 모드’를 만들어낸다. 불안도, 분노도, 창의성도 고정된 내 본질이 아니라 뇌가 지금 이 순간 구성해내는 일시적인 상태다. 그리고 뇌가 만들어내는 현실은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과거 경험과 예측이 덧씌워진 개인화된 버전이다.

이것이 무너지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내가 보는 것도 뇌의 구성물이고, 내가 느끼는 감정도 뇌의 예측 결과라면, “나”라는 것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건가. 그런데 배럿이 이끌어가는 방향은 허무가 아니라 가능성이다. 지금의 마음이 영원한 내 본질이 아니라면, 바꿀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실을 바꾸고 싶다면 예측과 해석의 방식을 바꾸면 된다. 그리고 그것은 곧 뇌를 다시 훈련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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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있었다. 뭔가가 바뀐 것 같은데 정확히 뭐가 바뀐 건지 금방 설명하기 어려운, 그런 종류의 독후감이었다. 뇌과학 책인데 결국 나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느끼고, 왜 어떤 날은 같은 일이 다르게 느껴지는지. 배럿은 그것들에 과학적 언어를 붙여주었고, 그 언어가 의외로 자유로웠다.

뇌가 만들어낸 현실 안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두렵지 않다. 오히려, 그 현실을 만드는 방식을 조금씩 바꿀 수 있다는 말이 오래 남는다. 이 책은 뇌에 대한 책이지만,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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